5.18 광주의 역사 속으로

[프로젝트] 5.18 광주의 역사 속으로

– 늘픔약사회 2019 역사기행 –

5.18 광주의 역사 속으로

 
작성자: 김다연

 

늘픔약사회에서는 5월, 내년이면 40주년을 맞이하는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인 광주로 1박 2일 역사기행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함께 버스를 타고 내려가 5시간의 긴 시간 끝에 광주에 도착하여 옛 전남도청이 있는 금남로로 다 함께 이동했다.

 

옛 전남도청 내 5.18민주평화기념관

 

옛 전남도청 안에는 5.18민주평화기념관이 있다.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전 광주가 겪은 근대 100년의 역사를 볼 수 있고, 전시장 내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조형물과 감각적인 영상들로 그 날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그 중 가장 발걸음을 오래 머물게 한 곳은 ‘광주를 지나간 시간’이라는 공간이었다. 이곳에는 5.18민주화운동의 10일간의 일들을 경험자 증언(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들이 일자별로 구성되어 있다. 경험자들의 증언이 너무도 생생해서 그날의 아픔이 피부로 느껴졌다. 수많은 목격자들의 증언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밝혀져야 할 진실은 왜곡되고, 가해자들은 온전히 처벌받지 않았다.

 

옛 전남도청 앞 단체 사진

 

이튿날 오전, 다시 금남로로 이동하여 5.18 기념재단 소속 해설사 선생님과 동행을 시작하였다. 해설사 선생님은 5.18 민주화운동 현장에 있던 분이셨는데, 그래서인지 그 때의 광주가 더욱 생생히 느껴졌다.

 

옛 전남도청 본관 2층 복도

 

첫날 미처 둘러보지 못한 옛 전남도청 본관 내부로 들어갔다. 전남도청 부지사실은 1980년 5월 22일 시내 유지급인사, 목사, 변호사 등을 중심으로 수습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수차례 회의가 진행된 장소이다. 이곳에서 계엄사에 요구할 협상 조건을 토론하였다.

 

수습위원회는 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를 공수부대원들이 과격진압을 하는 과정에서 폭압적인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7개 항의 조건을 계엄사에 제시하기로 하였다. (중략) 그러나 5.18광주민중항쟁 전 기간 동안 약속이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 조비오 증언>

 

1980년 5월 27일 새벽,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에 총알에 맞아 전사한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공간도 밟았다.

 

“여러분! 우리는 저들에게 맞서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중략)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투쟁에 임합시다. 우리가 비록 저들의 총탄에 죽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1980년 5월 27일 마지막 연설>

 

광주에는 5.18민주화 운동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29개의 사적지가 있다. 2013년 9월까지 총 27호가 지정되었으나 2017년에 2개의 사적지가 추가되었다. 5.18민주화운동의 최초 발원지인 전남대학교 정문을 사적1호로 시작하여 최초의 학생 연좌 시위가 있었던 구 가톨릭센터 앞 금남로는 사적 4호, 구 전남도청과 5.18민주광장, 상무관, 광주 YMCA는 사적 5호이다. 부상당한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본 전남대병원, 광주 기독병원, 구 적십자병원은 각각 사적 9호, 10호, 11호이다. 또한, 계엄군들이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살해한 주남마을, 광목간도로도 각각 사적 14호, 15호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과 약, 생필품을 제공하는 등 모든 상인과 시민이 하나가 된 양동시장은 사적 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적지 정보 참고 사이트: http://518road.518.org)

새롭게 추가된 사적지 28호는 전일빌딩으로 최근 헬기 발포 총탄 흔적이 발견되어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중요한 장소로 평가받았다. 또한 사적지 29호는 인권활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고(故) 홍남순 변호사의 자택으로 지정되었다. 홍변호사는 5.18민주화운동 때 시민학살에 항의하는 뜻으로 행진을 펼치다 옥고를 치렀고, 군사정권시절 양심수들을 위한 무료 변론을 맡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양심 변호사였다. 5.18민주화운동 사적지는 현재도 계속 발견되는 중이다. 이는 5.18민주화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은 후, 5.18 민주화운동기록관(구 가톨릭센터)을 방문했다. 5.18민주화 운동의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역사적 의미를 함께 공유하기 위한 공간이다. 당시 공공기관에서 작성한 ‘5.18사태일지’, 전남도청 분수대 위에서 낭독한 성명서와 호소문, 독일 NDR특파원 힌츠페터 일행의 촬영 사진, 전남매일신문 나경택기자가 기증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시계탑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계속 전승되어야 합니다.
시계탑은 자유의 기념물이자 한국의 민주주의의 시작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 5월에 5.18 참상을 처음 보도한 독일 공영방송 NDR위르겐 힌츠페터 기자>

 

옛 전남도청 앞에 위치한 시계탑

 

5.18민주화운동 당시 옛 전남도청 앞을 지키고 있었던 시계탑은 외신기자의 ‘시계탑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기사가 나자, 신군부는 시계탑을 조용히 농성광장으로 옮겼다. 정확히 언제 옮겼는지 알 수 없으나 2015년 1월에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 30년 이상이 걸렸다. 시계탑에서는 매일 오후 5시 18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리는데, 이는 과거와 현재, 미래 세대를 아우르는 화합을 상징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려고 할수록 옛 전남도청의 총탄 자국을 지우는 등 역사를 감추고 왜곡시키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시계탑을 제자리로 옮겼고, 옛 전남도청 지키기 운동 등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5.18 진상 규명

 

마지막 일정으로 국립 5.18 민주묘지에 방문했다. 희생자분들의 영을 기리며 참배를 진행했다. 참배하는 동안 마음이 정말 무거웠고, 마음 한 켠에 미안함이 자리잡았다. 해설사 선생님께서 묘역을 돌면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희생자들의 삶과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해서 이 사건이 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왔다.

 

국립5.18민주묘지 참배

 

5.18 민주화운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공동체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5월 21일 13시에 애국가가 울리고 계엄군의 실탄이 쏘아진 그 때, 광주 온 곳곳에서 무차별적인 사살이 일어났다. 마지막 날까지 광주 시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고, 서로를 도왔으며, 모두가 하나였다.

5.18 민주화운동은 더 이상 과거의 아픔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앞으로의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희망의 표시이다.

 

국립5.18민주묘지 앞 단체 사진

 

5.18민주화운동을 우리 삶과 어떻게 연관시킬 수 있을까?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가서 계속 고민해야할 지점이다.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고, 현재 우리가 딛고 있는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9 늘픔약사회 5.18 광주역사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