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명 사용을 통한 의료서비스 질 강화

[기고문] 성분명 사용을 통한 의료서비스 질 강화

▲ 장보현 약사

[문제] 다음의 약은 각각 무슨 약이고, 무엇이 다른가?
①케어탈정 ②에이서정 ③아로탈정 ④뉴마탈정 ⑤세나펜정 ⑥아덴만정 ⑦페노클정 ⑧아스로정

지금 바로 이 문제를 보고 30초 안에 답할 수 있는 의사, 약사가 과연 있을까? 혹은 바로 앞에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나 스마트폰, 의약품 데이터베이스(책자, 파일)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1시간 내에 답할 수 있는 의사, 약사가 과연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고 확신한다.

[정답] 위의 8개의 약은 모두 aceclofenac 0.1g을 성분으로 한, 생물학적 동등성을 인정받은 동일 성분, 동일 효능의 의약품이다. 즉, 회사만 다른 다 같은 약이다.

2016년 3월 기준 ‘저가약 대체조제 장려금 지급대상 의약품목(9,201 품목)’에 등재된 의약품 중 aceclofenac 0.1g을 성분으로 생물학적 동등성을 인정받은 품목이 100개가 넘는다. 즉 동일한 성분과 효능의 약인데도 불구하고 ‘제약회사, 상품명, 약 모양’만 다른 약이 100개가 넘는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동일 성분 당 품목이 20개가 넘는 의약품들은 위의 목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를 임상 현장에 적용시켜보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바쁜 진료 현장, 응급 상황, 환자가 밀려있는 약국에서 환자가 복용하던 약품명을 체크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복용하는 여러 이름의 약을 빠른 시간 안에 무슨 약인지 파악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는 적절한 치료, 처방, 조치를 지연시킬 뿐만 아니라 중복투약, 약물상호작용 등으로 인한 위험을 증가시켜 결과적으로 의료과오(Medication error)를 야기하게 된다.

의료기관간 혹은 의료인 간의 소통에 있어서도 해당 상품명의 의약품이 어떤 성분인지 모르는 경우, 정확한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며 조제 시에도 유사한 상품명을 가진 다른 성분의 의약품으로 잘못 조제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성분 당 품목이 많고, 의약품의 상품명이 다 다른 한국에서의 처방 및 조제 과정에서의 상품명 사용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악화시키고 환자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성분명의 사용이 약물의 명확한 확인, 환자에 대한 의약품의 안전한 처방과 조제, 전 세계의 전문가 사이의 의사소통 및 정보의 교환 차원에서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일본의 경우 제네릭 의약품 허가 시 의약품의 이름은 성분명(일반명)을 기본으로 명명하고 있다. aceclofenac 0.1g을 가정하여 예로 들면, ‘삼성)아세클로페낙 100mg’,’SK)아세클로페낙 100mg’, ‘롯데)아세클로페낙 100mg’으로 명명되어지는 것이다. 유사 상품명으로 인한 의료사고 방지를 위한 것으로, 의약품 해석 오류 사고가 빈발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제약회사들이 상품명을 자유롭게 붙이기 때문이라는 평가에 기인하여 이 같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특정 성분의 약에 대해 한 가지 이름만 사용하기 때문에 혼란을 줄여 의료 과오(Medication error) 방지할 수 있다. 또 의사, 약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 간의 의사소통에서의 오류를 줄이며 다른 의료기관이나 진료과에서 한 환자에게 동일한 성분이 처방되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환자 역시 처방전에 기록된 성분 이름을 통해 본인이 복용하는 약물을 정확히 파악 할 수 있고, 의료기관 변경 및 상품명 변경 등으로 인한 혼란이나 잘못된 복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성분명 사용, 성분명 처방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성분명은 INN(International Nonproprietary Name)으로 정해지는데, 성분명(일반명, INN)은 먼저 영어명으로 정하고 새로운 약리작용을 갖는 그룹의 최초물질을 명명할 때는 앞으로의 관련물질을 고려하여 명명한다. 또한 어음(語音)과 철자가 명확하고 되도록 짧으며 기존의 명칭과 쉽게 혼동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성분명은 보통 화학군(Chemical class)을 나타내기 때문에 의약품의 약리학적 특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예를 들어 모든 beta-blockers는 ol로 끝나고, ACE-inhibitors는 pril로 끝난다). 이러한 표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성분명의 처방내역만 봐도 의약품의 약리학적 특징까지도 쉽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으며 보건의료인의 임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추가로 성분명은 국내, 국외를 망라하여 일상적인 교육과정에서 의약품의 명칭으로 사용되어진다. 의학, 과학 출판물에서도 성분명은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그렇기 때문에 학부와 대학원 교육이 진료행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분명 처방’, ‘성분명으로 의약품 이름 명명’, ‘상품명과 성분명의 동시 표기’ 등 여러 수단을 활용한다면 현재 한국의 ‘상품명 정책’이 야기하는 여러 문제를 해소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보다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성분명 처방’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때 약제비 감소, 유통 부조리 해결이 주로 다뤄져왔다. 하지만 실제 임상현장에서 환자의 건강과 직접적으로 연관될 수 있는 이 중요한 문제점은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성분명 처방’의 경우 각 직역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여 한발작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성분명 사용’에 반대할 보건의료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 글의 시작에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정책적 답은 생각보다 쉽고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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