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약사들의 ‘공동체 약국’ 실험

[인터뷰 및 기사] 젊은 약사들의 ‘공동체 약국’ 실험

젊은 약사들의 ‘공동체 약국’ 실험

ㆍ인천 ‘늘픔약국’… 소화제도 철저한 복약지도
ㆍ노동자 평균임금 받고 이익은 지역사회 환원

늘픔약국의 최진혜(왼쪽)·노윤정씨. 상비약을 팔 때도 주의사항을 꼼꼼히 설명하는 ‘조금 다른’ 약사들이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늘픔약국의 최진혜(왼쪽)·노윤정씨. 상비약을 팔 때도 주의사항을 꼼꼼히 설명하는 ‘조금 다른’ 약사들이다.

인천 남동구 간석동에는 특별한 약국이 있다. ‘공동체 약국’을 표방하는 늘픔약국이다. 지난해 9월 문을 열어 이제 갓 10개월을 넘겼지만 벌써 지역사회에 탄탄하게 자리잡았다.

젊은 약사 노윤정씨(26)와 최진혜씨(26)가 운영하는 늘픔약국은 약을 파는 원칙이 다른 약국과 좀 다르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영양제 등 꼭 필요하지 않은 약을 권하지 않는다. 상태가 심각하면 약을 판매하는 대신 환자를 병원으로 보낸다.

약사의 기본 업무지만 사실상 잊혀지다시피한 복약 지도는 철저히 한다. 소화제·해열제 같은 상비약을 팔 때도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설명한다. “12세 미만 사용금지, 8시간마다 1~2정(하루 최대 6정)”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여 파는 식이다. 약국의 15평 공간 중 4평은 테이블과 의자를 갖춘 상담공간으로 떼어놨다. 한 달에 두 번씩 일요일 근무도 한다.

월수입은 각각 250만원 정도다. 약국 문을 열 때 2009년 한국노총이 발표한 노동자 평균임금 정도만 받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노씨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그렇게 한다고 들었다. 우리도 남들 받는 만큼만 받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월급을 빼고 남은 수익은 약국이 벌이는 지역사업에 고스란히 재투자한다. 지역에서 얻은 이익을 지역사회로 환원한다는 취지에서 분기별 약국 소식지 발간, 마을문고 운영, 독거노인 약 정리 사업 등을 하고 있다.

늘픔약국의 모태는 2007년 결성된 약학대학 연합 동아리 ‘늘픔’에서 비롯됐다. 늘픔은 순우리말로 ‘앞으로 좋게 발전할 가능성’을 뜻한다. 의료 공공성 강화와 국민 건강권 실현을 꿈꾸며 모인 약대생들은 동대문 쪽방촌 무료 진료 등 봉사활동으로 사회 참여를 시작했다. 이후 졸업생이 주축이 돼 지난 3월 정식으로 ‘더불어 건강한 사회를 실현하는 늘픔약사회’를 창립하고 첫 사업으로 늘픔약국을 열었다. 농촌 공동체 약국의 형태로 전국 10여곳에서 성업 중인 ‘농민약국’처럼 도시에서도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지역기반의 공동체 약국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인천의 1호점이 성공하면 2호점, 3호점을 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약사 경력 2년 안팎의 ‘초짜’인 노씨와 최씨에게 약국 개국은 쉽지 않았다. 상품 배치, 상담 요령, 세무 업무 등 약국 운영의 모든 것을 헤매며 배웠다. 최씨는 “왜 서비스로 드링크제를 주지 않느냐, 조제료 몇백원을 왜 안 깎아주느냐고 타박하는 손님들을 이해시키는 게 힘들었다”며 웃었다.

“약국 같지 않다”는 불평은 이내 칭찬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이 놀이터인 줄 알고 자꾸 놀러가자고 한다”는 중년 여성도 있고 “10년 넘게 혈압약, 당뇨약을 먹으면서도 이런 얘기(복약 지도)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고마워하는 어르신도 있다. 약을 사지 않고 상담만 하러 오는 손님도 꽤 된다. 최씨는 “약국을 시작한 지 석 달쯤 됐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집에서 만들다 생각나서 가져왔다며 식혜를 챙겨주셨는데, 비로소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찡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반의약품 슈퍼마켓 판매에 대해 “약물 부작용에 대한 감시·감독이 지금도 부실한데 논의가 편의성 위주로 흐르면서 중요한 안전성 문제는 뒤로 밀리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약사회의 이중성도 꼬집었다. 안전성을 이유로 일반의약품의 의약외품 전환을 반대하면서,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요구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의료민영화에 대한 입장도 단호했다. 최씨는 “찬성론자들은 시장논리와 효율성을 강조하며 미국을 예로 들지만,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붓고도 비효율적이며 국민 건강지표도 나쁜 나라가 미국”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